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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새의 재판 / 이경구
작성일 : 2019년01월14일 16시07분  조회수 :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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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칼럼]

황새의 재판

 

 

    지난해 봄 어느 날, 칠순이 넘은 나이에 거실 의자에 앉아 『국어 읽기 5-1』을  읽었다. 어린이가 배우는 글은 어떤가 하고  5년 전에 종각역 근처에 있는 영풍문고에서 샀다. 이 교과서의 첫째 마당에는 「황새의 재판」이라는 우화가 나오는데, 그 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꾀꼬리와 뻐꾸기, 따오기가 모여서 서로 자기 목소리가 좋다고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황새를 찾아가 누구 목소리가 가장 좋은지 결정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하였다. 황새는 지혜 있고 일을 바르게 처리한다고 생각하였다.                                                                                                                                                                                                                                                            
따오기는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개구리, 우렁이, 올챙이, 거머리, 굼벵이,
지렁이 등을 모아 가지고 맵시 있는 박에 담아서 황새의 집으로 가져갔다. 따오기는
황새에게 좋은 목소리 겨루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황새의 집에서 목소리 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꾀꼬리가 소리를 곱게 냈지만,
   황새는 “소리가 가볍기만 하여 쓸 데가 없구나.” 하고 말했다. 뻐꾸기가 목청을
   가다듬어 소리를 냈으나, 황새는 “소리가 근심이 많아  슬프기만 하구나.” 하였다.
   따오기가 큰 소리를 내자, 황새는 “소리가 웅장하니 대장부의 기상이로다.” 하고
   칭찬하였다.

    이 글을 읽으니 고등학교 시절에 한 동네에 사는 아저씨가 나를 자기네 사랑방에 초대하고 펜을 잉크에 찍어 백지에다 ‘有我無蛙人生之恨’이라고 써서 주었던 일이 생각났다. 아저씨는 ‘유아무와인생지한’이라고 읽고 나에게 뜻을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 것이 한이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실력이 있어도 개구리가 없어서 출세를 못했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하루는 임금이 평복을 입고 노인으로 가장하여 야행을 나갔다가 불빛이 비치는 민가를 찾아갔다. 방안에서는 어떤 선비가 벽에 ‘有我無蛙人生之恨’이라는 글을 붙여 놓고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는데 그 글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선비에게 뜻을 물었더니 대답이 이러하였다.
    먼 옛날 꾀꼬리와 까마귀가 살았다. 그들은 서로 자기 목소리가 곱다고 싸우다가 황새를 찾아가 심판을 받기로 하였다. 까마귀는 개구리를 잡아서 황새에게 갖다 바치고 노래 겨루기 때에 잘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꾀꼬리와 까마귀는 황새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황새는 까마귀 목소리가 더 곱다고 판정하였다.
    선비는 과거만 보면 낙방(落榜)을 하였다. 시험을 잘 보았으나 돈이 없고 정승의 자식도 아니라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선비가 벽에 붙여 놓은 글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자기도 여러 번 과거 시험을 치렀으나 낙방을 하였는데, 며칠 뒤에 임시 과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과거를 보는 날이 왔다. 선비는 시험장을 찾아가 마음을 가다듬고 앉았다. 시험관이 나타나 시제(試題)를 내거는데, 보니 ‘有我無蛙人生之恨’을 풀이하라는 것이었다. 선비는 대궐을 향하여 큰절을 올리고 붓을 들기가 무섭게 한지에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답을 써 내서 과거에 장원 급제하였다. 
    아저씨는 나에게 식혜를 권하며 그 선비가 고려조의 대시인이요 『백운소설(白雲小說)』의 저자인 이규보 (李奎報)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글에는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옛글을 표절하는 것은 도둑과 같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 그 당시 문교부에 근무하던 친구와 서울시청 뒤편 무교동에서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었다. 내가 술잔을 건네며 ‘有我無蛙人生之恨’이라는 문자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여말(麗末)의 문신 이규보가 관리들의 비리를 풍자한 말이라고 하였다.  

  「황새의 재판」의 머리글에는 “따오기와 황새의 성격에 주의하여 ‘황새의 재판’을 읽어 봅시다.”라는 학습 목표가 씌어 있다. 따오기는 심판관인 황새에게 개구리를 뇌물로 바치고 꾀꼬리와 뻐꾸기를 상대로 좋은 목소리 겨루기를 벌여서 이겼다. 
  「황새의 재판」은 나에게 따오기와 황새의 처세도 필요함을 귀띔하는 것 같았다. 교과서에 따오기가 이겼다고 씌어 있기 때문이다. 황새는 뇌물을 거절했다고 써야 하지 않았을까?      
 

 

□ 이경구 
前 외교관.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역임

http://seoultoday.kr/homepage.php?minihome_id=lgg

 

이경구 (soolee1998@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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