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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란색 물개』 제1화 '한복입은 女子' (제1회) / 김산

등록날짜 [ 2018년11월08일 21시39분 ]

옴니버스 연재소설 『파란색 물개』  / 김산 作

 

제1화 <한복입은 女子> (제1회)

 

남자의 눈에 여자가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는 사랑스러울 때이다. 더 아름다워 보일 때는 사랑스러운 여자가 한복의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고 일을 하는 모습이다. 정신이 몽롱하도록 아름다워 보일 때는 여자가 돌아앉아서 저고리를 막 벗는 모습이다. 그 후로는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감성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오직 본능을 추구하는 욕망이 야생마를 타고 달려갈 뿐이다.
종로에 있는 한정식전문점 ‘토담’을 아는 사람들은 항상 잭팟을 상상하며 대문턱을 넘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이충암이 살던 고택의 정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 주변에는 역사의 흔적이 묻은 석등이며, 작은 바위,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 사이에 손님들이 앉아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벤치가 있다. 벤치에 앉아서 수련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금붕어를 보고 있노라면 운이 좋은 날은 그녀 이숙영을 볼 수가 있다.
손님들이 토담에서 이숙영의 차접대를 받은 날은 잭팟을 터트린 날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손님이라고 해서 아무나 이숙영의 접대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차 접대를 하는 방식은 아무도 모르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우선 손님 품격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는다. 늙고 젊은 손님을 가리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전 예고 없이 접대를 한다. 차 접대 시간은 오 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규칙이다.  
그러다 보니 토담 손님들 사이에는 전설 같은 일화들이 수도 없이 떠다닌다. 
구청의 청소부가 정년퇴직을 하루 전에 큰맘 먹고 토담에 예약을 했다. 이튿날 점심을 먹고 잠시 한담을 나눌 때 문이 열리더니 다기를 든 종업원이 얌전하게 들어오더란다.
행운의 여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청소부들은 그저 흔한 후식으로 차를 따라주는가 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  
한복을 입은 이숙영이 나비처럼 소리 없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고혹적인 미소를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기 옆에 앉았다. 차주전자를 들기 전에 저고리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숨이 막혀 기절을 하는 통에 119에 실려 갔다는 실화가 있다.   
명동에 건물이 있어서 한달에 임대료를 삼억 씩 받는 육십 대 졸부 스토리도 있다. 졸부가 토담의 주인 이숙영이 금세기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숙영에게 차 대접을 받는 잭팟을 터트렸다.  
졸부는 한복 차림의 이숙영이 저고리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는 순간 온 몸을 짓누르는  전율에 눈이 멀어 버렸다. 어떻게 차를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성북동 집까지 왔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거실에 앉아서 이백여 평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더란다. 정원에 피어 있는 수많은 꽃, 크고 작은 아름다운 나무들, 기암괴석은 보이지 않고 이숙영의 자태만 어른 거렸다. 
다소곳이 차를 따르는 이숙영의 모습 하며, 수선화처럼 청조한 얼굴 하며, 한복 밖으로 은연 중 드러나는 팔등신의 몸매 하며, 웃을 때 마다 드러나는 하얀색의 눈부신 치아. 평생 이슬만 핥아 먹고 산 것처럼 얇은 혀. 아! 무엇 보다 저고리 밑으로 살짝 드러난 야들야들하고 뽀얀 손목. 그 손목을 잡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잭팟은 하루에 두번 오지 않는다.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렸으면 궁둥이 털고 일어서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두 번의 잭팟을 기원하며 코인을 넣기 시작하면 결국 박카스만 마시고 카지노를 나서기 마련이다.
졸부는 다시 토담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숙영의 그림자조차 구경 할 수가 없었다. 예약이 되어 있지 않다며 방석에 앉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뒷돈으로 내민 백만 원짜리 수표를 분노로 구겨 쥐고 다음 날을 예약하려 했다. 불행하게도 그 다음날은 예약이 꽉 찼다. 한달 후에는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납덩이처럼 무거워진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단다.
초선 국회의원들은 이등병 계급장처럼 일억 촉광의 빛나는 금배찌를 앞세워 이숙영을 찾는 수가 있다. 그런 날은 100% 이숙영은 제주도에 있는 집에서 체류 중이다. 
금배찌 체면이 있지, 이숙영이 토담에 있는 날 예약을 해 달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지배인은 정중하게 해외 출국 계획이 있어서 정확한 날짜를 예약을 할 수 없노라고 예의바르게 거절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날이 갈수록 이숙영이라는 존재가 신비스러워 질 수 밖에 없다. 
모 재벌의 세컨드다. 권력의 실세가 스폰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양반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혼자 사는데 집에서 엄청나게 큰 세퍼트와 동거를 한다. 남자를 모르는 석녀다. 에이즈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등 별별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백천길은 사업에 서른 번쯤 실패를 하고 나서야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에 접신을 했다. 접신을 했다고 해서 신들린 것은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있으면 실패 할 확률은 0프로라고 확신했다. 
그 동안 실패한 사업을 거울삼아 성공할 확률이 백 프로인 새로운 사업 아이템도 정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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