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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을 치지 말라는 패문에 답하는 글」에 대하여 (전자책)

등록날짜 [ 2025년05월09일 07시51분 ]

「왜적을 치지 말라는 패문에 답하는 글」에 대하여
최두환 지음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이 연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3년째 1594년 초에 명군에게 뇌물을 써서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 요구를 선유도사 담종인이 들어줌으로써 『금토패문』, 곧 ‘일본군을 치지 말라’라는 글을 당항포해전을 하던 때에 삼도통제사 리순신이 받고 그 답장을 써 보낸 것에 대하여 그 당위성과 가치를 밝혀본 것이다.
  그 경위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군이 삼도통제사 리순신 함대에 의해 해전마다 패하자, 마침내 일본군이 전투를 회피하며, 전쟁 방향을 돌려 장기전에 들어가기 위한 기만전술로서 일본군이 그들 나라로 돌아가니 치지 말라는 패문이다. 그 내용이 담겨있는 『리충무공전서』 권1 「답금토패문」을 보면, 담종인이 보내온 「금토패문」의 핵심은 리순신이 지적은 했지만, 그 경과를 알 수 있는 본문이 리순신의 장계에는 없다. 반면에 정탁의 『임진기록』「통제사 리순신의 장계」라는 곳에 담종인의 「금토패문」의 내용이 실려 있고, 리순신의 「답금토패문」도 함께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리충무공전서』 권4 장계 「陳倭情狀」과 「唐項浦破倭兵狀」에 실려 있고, 그에 해당하는 『진중보고서 : 임진장초』 장66 및 장67의 글이 정탁의 『임진기록』에서 「통제사 리순신 장계」에 뒤섞여 실려 있는데, 장66 및 67은 그 순서를 바꾸어야 서로 맞아진다.
  「답금토패문」을 써 보낸 과정을 잠시 보면, 1594년 3월 4일에 학익진을 벌여 시루섬 앞바다에서 왜적을 무찔렀으며, 이튿날 5일에는 당항포에서 왜선 21척을 불태웠고, 6일에 담종인 도사부에서 ‘왜적을 치지 말라’ 하는 「금토패문」을 한산도에서 받아 보았고, 저녁때에 그 중국 군사를 만나 보고 보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면밀히 상황파악을 했을 것이며, 이튿날 7일에 그 답글을 써서 보냈다. 리순신이 그렇게 고심하여 직접 쓴 글은 『임진장초』 장66에 실려 있다. 
  이러한 선유도사의 명령에 대하여 리순신의 「답금토패문」은 사실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부당함을 조모 조목 따져 나갔다. 더구나 황제/임금의 말이 곧 법이라는 시대에 「답금토패문」은 사실 선유도사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반박한 것이니, 황제에 대한 명령불복종이나 항명에 해당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담종인은 리순신에게 아예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만큼 반박하지 못할 논리와 타당한 이유가 충분한 때문이다.
그리고 선유도사부의 「금토패문」을 받고 그 회답의 「답금토패문」을 써 보냈던 시기에 시루섬 앞바다와 당항포에서 해전이 있었는데, 그 전투편성은 『제승방략制勝方略』에 나오는 육진대분군六鎭大分軍의 오위五衛를 축소한 형태로서 삼읍분군三邑分軍의 삼위三衛, 즉 좌위장左衛將‧중위장中衛將‧우위장右衛將으로서 중위中衛 하나만을 임진왜란 초기에 운용한 것인데, 1594년의 당항포해전의 결과보고에서는 장67의 보고와는 거의 같으나, 약간 다른 부분으로서 좌위·중위·우위의 삼위진을 운용했으며, 그 편성이 중위中衛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좌선座船(기함)이 명시되지 않았고, 중위장中衛將의 임명이 없고, 좌·중·우의 삼위三衛에는 모두 특히 후부장의 임무와 담당 장수가 몽땅 빠진 것이 있는데, 이것은 공격을 위주로 한 것으로 보이며, 그 후방은 유격장·응양장·별도장들이 적절하게 활용되었을 것이라 본다. 다만 하나의 중위中衛만을 운용해도 배진의 운용은 무척 어려운 기동인데, 좌위左衛·우위右衛를 함께 삼위진의 배진配陣으로 함대를 기동하는 것은 더 넓은 바다의 공간이 필요하며, 참전한 장수들의 수는 30명 안팎으로서 한산대첩 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반도 당항포처럼 무척 좁은 수로에서는 기동하기조차 할 수 없어 장사진으로 바꾸어 운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삼위진의 배치를 보더라도 참으로 복잡하며,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영등포·장문포 앞바다 시루섬 바다 가운데서 학익진을 벌여 싸웠다는 것은 현대 함정의 기동전술로서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금토패문」과 「답금토패문」에서 보인 왜적들의 큰 관심은 ‘기와와 왕대’였다. 왜적들은 이를 배에 가득 실어 가져가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이를 간과해 왔다. 이것은 일본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라 보며, 이에 따른 지리적·생태적 환경을 조명해야 할 앞으로의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리순신의 답글로 보낸 글은 글의 구성이 처음에 맡은 우리 해안방어에 주력하고 있고, 지금 왜놈들이 있는 곳들이 모두 우리 땅이라는 사실로서 큰 틀에서 본 당위성이며, 담종인 도사부에서 왜적을 치지 말라는 패문을 보내온 사실과 더불어 그 내용의 부적절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으며, 왜적의 활동지역이 조선 수군의 활동지역과 마찬가지로 모두 조선 땅이라고 강변했으며, 그 패문에 대한 리순신의 회답문은 상대방에게 꼼짝하지 못하도록 조리 정연한 설득력과 호소력 있는 감동적인 서술문이라는 것이 ‘송나라 역사를 읽고’라는 「독송사」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명문이라는 평가를 하는 이유이다.

― <초록> 


                      - 차    례 - 

<초록> 

Ⅰ. 머리말 
Ⅱ. 임진왜란과 일본군의 전략 변경  
    1. 임진왜란의 특성  
    2. 일본군의 전략과 그 변경 

Ⅲ. 왜적을 치지 말라는 패문에 답하는 글과 배경  
    1. 담종인의 왜적을 치지 말라는 패문에 답하는 글  
       [원문] 「答譚都司宗仁禁討牌文」  
    2. 담종인의 왜적을 치지 말라는 패문의 배경 

Ⅳ. 삼도수군통제사 리순신의 정세분석과 대응책  
    1. 『임진장초』 장66  
      [원문]【壬辰狀草】 狀66  
    2. 왜군의 정세를 아룁니다  
      [원문]「陳倭情狀」【리충무공전서】  
    3. 『임진장초』 장67  
      [원문]【壬辰狀草】 狀67  
           「唐項浦破倭兵狀」【리충무공전서】  
    4. 「통제사 리순신 장계」『임진기록』  
      [원문]【統制使 李舜臣 狀啓】  
    5. 장66/67과 「금토패문」의 상관관계  
     「금토패문」의  문학적 가치평가 

Ⅴ. 맺음말  

부록 : 이두문 
참고문헌 
ABSTRACT 

 


[2025.05.01일 발행. 229쪽. 정가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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