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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한 사람의 뜻이 머무는 자리,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관

등록날짜 [ 2025년06월05일 14시36분 ]

 


 

 

한 사람의 뜻이 머무는 자리,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관

서울남부보훈지청 보상과 정이령 주무관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층 건물과 차량들 사이. 도시의 분주함이 가득한 이곳에 조용한 울림을 품은 공간이 있다. 바로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관이다.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김창숙 선생의 삶과 신념을 온전히 담아낸 현충시설이자, 우리의 삶과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공간이다.

 

1879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김창숙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유학에 밝고 학문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책 속의 진리보다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3·1 운동에 유림 민족 대표로서 참석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유림을 규합해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파리장서운동을 계획했다. 상하이로 망명한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26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부의장으로 뽑혔으나, 이듬해 일제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그는 일제의 고문에 굴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포로라 표현하며 변호사의 변론을 거부하는 등 일제의 모든 통치체제를 부정하였다. 광복 후에는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취임해 학문과 정신의 독립을 가르쳤다. 그는 말보다는 실천으로, 사상보다는 행동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이러한 선생의 삶을 기리고자, 2011년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관이 개관되었고, 2014년에 국가보훈부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 안에는 전시실과 기념홀, 독서실, 시민문화센터가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 누구나 이곳에서 역사와 정신을 마주할 수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김창숙 선생의 유품과 사진 자료, 독립운동 관련 문서가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연대기 순으로 구성된 전시물은 선생의 격동의 삶을 따라가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관람객들은 그 속에서 단지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레 마주하게 된다.

이 기념관이 자리한 서초구 반포동은 김창숙 선생의 고향도, 활동지였던 곳도 아니다. 하지만 현충시설이 반드시 고유의 역사장소에만 위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자리함으로써 교육과 기념의 기능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역사는 기념비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정신이 오늘의 우리 안에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역사는 완성된다.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관은 과거를 회상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공간이다.

한 사람의 신념이 시대를 바꾼다. 그 조용한 힘을 느끼고 싶다면, 이 기념관을 찾아보시길 권한다. 그곳엔,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마음이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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