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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거북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최두환

원형 거북선의 실체를 생각하며
등록날짜 [ 2018년12월25일 22시58분 ]

[최두환 칼럼]

거북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원형 거북선의 실체를 생각하며

 

 

‘거북선’은 그냥 귀와 입에 익은 대로 쓰기로 한다. ‘거북함’이 더 옳겠지만, 귀에 익은 말은 약간의 다른 말씨로도 언제나 거북하게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북배’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원어는 ‘龜船(귀선)’도 있지만, ‘龜艦(귀함)’도 있다. 그런데 귀에 익고, 눈에 익으면 잘못도 잘못인 줄을 모르고 사는 것이 또한 인식의 맹점이기도 하다.

 

거북선은 그 동안에 논란이 참으로 많았다. 재차 복원된 거북선마저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고, 눈에 익은 대로 그 동안의 무수한 말들을 뒤로 한 채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2층 구조 그대로이다. 그 동안에 학계 및 연구소에서 거북선의 구조 및 성능 등에 관하여 이견이 많았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어 오직 문헌에 의한 주장들에 대하여 해군의 입장 내지 배를 부리는 사람의 체험과 입장에서 이론적으로 정리하였다.

 

이 연구의 내용은 무엇보다 수군의 전통을 전제로 하여 고대 거북선과 임진왜란 당시 리순신이 건조한 거북선과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하여 선박의 특징, 즉 임진왜란 당시 종군 인물의 기록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지금까지 학계에서 연구되고 논란되고 있는 거북선 관련 자료를 분석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원형 거북선 구조를 연구한 것이다.

 

그 거북선의 실체를 최종적으로 종합하면, 3층 구조로서 미르머리는 거북선 덮개 위치보다 높지는 않고, 그 크기도 이물 겻집 너비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클 것이다. 노는 1795년의 전라좌수영 거북선에는 16개임에 비하여 임진왜란 당시에는 한 쪽에 7개씩 모두 14개를 사용했을 것이다. 포구멍은 0-1갑판인 현측인 여장에 설치되었으며, 그 수는 적어도 8문 이상이고, 화포수 인원으로 보아 최대 24문일 수 있다. 그리고 3층 구조의 덮개에 있는 등판개판에 포구멍이 6개가 더 있었다. 물론 미르머리와 거북꼬리 아래에도 포구멍이 있었다. 함교는 판옥선이 있는 0-1갑판3층 구조에서 덮개 위로 나와 있고, 판옥선 함교 크기의 규모로 운용되었을 것이다. 승조원의 수는 125~130명이다. 거북선의 크기는 주척으로 만든 거북선의 무게는 60톤영조척으로 90톤 정도로 적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임진왜란 당시에 리순신이 만들어 운용했던 거북선은 조선 초기 태종 때에 있었던 거북선과는 상관이 없는 발명품이다. 다만 그 이름이 같았을 뿐이다. 이런 거북선으로써 리순신은 왜적과의 해전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었던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창조정신을 배우고, 또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리순신이 왜적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언필칭 “충무공의 필승의 정신전력”이란 말을 수없이도 들어왔는데, 과연 주먹 즉 파괴력 없는 정신전력이 가능할까? 바로 이러한 필수불가결한 파괴력에 주안점을 두고 임진왜란의 승전 요인 가운데서 함포전에 운용된 군선에 탑재한 무기체계인 화기의 성능에 관하여 다루지 못하였던 것을 실험을 거쳐 그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1993년 1월에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에 부임하자마자 시작한 과업이다. 대형총통과 소형총통 모두와 신기전까지 임진왜란 당시의 것으로 복원하였고, 7개월 걸려 8월 5일에 발사시험과 시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성능과 운용법을 『화포식언해』 및 『신기비결』을 중심으로 연구했고, 전술적 기술을 『임진장초』를 중심으로 도출해내었다. 실체의 성능을 모르면서 아는 척 강단에 서는 것은 미래에 대해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그 결과로 말미암아 임진왜란 때에 리순신의 탁월한 휫손리더십과 아울러 수군이 운용한 무기체계의 우수성 및 그 효율적 운용법을 분석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해전에서 조선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곧 함포술이었으며, 거북선과 군선에 탑재한 대형총통과 일부의 소형총통을 제대로 운용한 결과였다. 특히 리순신은 판옥선을 모체로 한 거북선을 발명하여 그것을 해전에 투입시켜 돌격함으로 운용한 것은 왜적에게 기선제압의 효과를 가져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은 서양식 신제품 조총을 사용했지만, 해전에서의 그 성능을 보면 조선수군의 총통보다 위력파괴력이 결코 낫지 않았다. 따라서 해상에서 리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돌격함 거북선과 주력함 판옥선에 대형총통을 탑재하여 그 사정거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일본수군의 조총의 사정권 밖(200m 이상)에서 학익진(鶴翼陣)을 펴 대형총통을 중심으로 일본수군에게 집중공격을 감행하고, 사정권 안에서는 약간의 피해도 입었지만, 일본수군을 거의 전멸시켜 침략군의 전의를 완전히 꺾었을 뿐 아니라, 끝내는 조선군이 승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해전의 승리는 대형총통의 위력에 있었으며, 원거리에서 적선을 가운데로 몰아넣어 전화력을 집중시키는 전술을 학익진을, 포구안의 왜적선을 장사진으로 집중적으로 운용함으로써 리순신은 해전에서 싸우다가 잃은 배는 단 1척도 없는 신화를 역사에 남겼다.

 

바다로 들어오는 적군에게는 수군만한 것이 없다는 리순신의 전략은 거북선 같은 특수한 무기체계의 발명에 있고, 학익진이란 진형을 개발하여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거북선 찾기 운동은 유물과 아울러 그 정신을 찾아내는 노력이 앞으로도 더욱 필요하다. 정신을 잃으면 온몸과 모든 가치를 잃는다. 반면에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산다’는 속담도 있다. 지혜를 짜내어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평화는 전쟁을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에 가능하다. 전쟁의 승리는 정신전력의 우수와 더불어 막강한 화력과 그 운용술이 절대적 영향력으로 작용됨을 리순신의 삶을 통하여 교훈삼을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 최두환  

경영학박사. 동양사 문학박사
http://seoultoday.kr/homepage.php?minihome_id=c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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