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명 칼럼]
시인이 괴로워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잠수함은 바다 깊숙한 곳에서 장시간 작전을 수행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잠수함에는 산소 공급이 큰 문제로 작용합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잠수함에 토끼를 싣고 다녔습니다.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하면 토끼는 사람보다 7시간 먼저 죽습니다. 죽은 토끼 대신 한 병사가 토끼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다른 병사들이 시간 맞춰 토끼함을 들여다보면서 병사의 건강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토끼함의 산소가 부족하면 병사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신음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면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하다고 병사들은 판단했습니다.
이 병사가 누군지 아십니까?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입니다. <25시>라는 장편소설로 유명합니다. 게오르규는 잠수함에서 근무한 이때의 경험으로 우리 사회에 시인이 왜 필요한 존재인가를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시인이 괴로워하는 사회, 그 사회는 분명 병이 든 사회라고 게오르규는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 병 들어 괴로워하는 사회를 고발하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잘못된 사회적 병폐를 지적하고 고발하는 작품을 많이 썼습니다.
우리 문단은 지금 어떤가요? 병이 든 사회를 개선해 나갈 의지를 팽개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청산은 날 더러 말없이 살라 한다.’ 아시지요? 이거 아주 기가 막힌 처세술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다투어 귀엣말로 읊조리면서 힘겹게 싸우는 전사(戰士)를 향해 오히려 눈을 흘기고 손가락질하기를 서슴지 않는 문인이 우리 주변에는 의외에도 많이 기생합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말하지 않고,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이런 비겁한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 문단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기생충입니다. 잘못을 보면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고, 이 잘못을 어떻게든 개선해 나가는 작업에 벽돌 하나라도 옮겨 쌓는 올곧은 문인이 대접받고 존경받는 정의 사회를 기대합니다.
■ 정종명
소설가. 前 (사)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계간문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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