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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칼럼] 우경주의 끌리는 그림 한 점
등록날짜 [ 2020년06월22일 22시05분 ]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활 속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만나지 않는 비대면이 많아졌다.

 

지인들이 그리운 요즈음, 작품 가득 그리움으로 번져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만나보자.

 

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인 '수화 김환기'(1913~1974) 작가는, 1913년 전남 신안군 안좌도 출신으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추상미술을 시도했으며, 고국으로 돌아온 후 홍익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일본. 프랑스. 미국에서 활동하여 서양미술의 경험이 누구보다 많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생각으로 도자기. 산. 새. 달 등을 소재로 한국적 서정주의에 서양 기법을 담아 절제된 조형성과 승화된 예술성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232*172cm/면천에 유채/개인소장

                                 

1968년 1월 26일, 김환기 작가는

"일을 하며 노래를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 할 것인가"라고 일기에 남겼다.

 

작가는 63년 이후에 뉴욕에 살면서 새로운 양식의 예술을 보여준다. 1965년부터 그의 작품에는 구체적인 대상 표현이 사라지고 선보다 점에 대한 탐구를 많이 했다. 이 무렵 작가의 일기에는 ‘하늘을 나는 점(點)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것을 계속해보자’는 내용이 있다. 1970년부터 그의 캔버스에는 점들로 가득 채워졌다.

 

1970년 뉴욕 시절, 김광섭(1905~1977) 시인이 자신의 시가 실린 잡지를 작가에게 보내왔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시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한국을 떠나온 후 그리운 친구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뉴욕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향 안좌도 바다와 수많은 인연들을 점으로 찍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우주적 윤회를 담아냈다.

 

김환기 작가는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림 제목으로 차용했고, 이 작품을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하여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대 점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작가의 뉴욕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한국화단에 새로운 추상화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얇은 면천에 동양화에서 먹물이 화선지에 번지듯 묽은 안료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였다. 큰 캔버스에 작고 푸른 점들을 무수히 찍고, 그 주변을 네모 모양의 선으로 여러 번 둘러싸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반복하여 유화물감을 두텁게 칠한 효과처럼 보인다. 

 

푸른 빛 전면 점화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밤하늘의 별을 연상하게 한다. 섬세하게 표현된 작은 점들은 조화롭게 융합되어 집합체를 이루고, 수많은 점과 푸른색의 농담(濃淡)이 생동감 있는 공간을 만들어 빛의 울림이 있는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했다. 이는 재료와 색채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조형실험을 한 결과이다.

 

김환기 작가에게 푸른색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안좌도에서 자란 그에게 하늘과 바다는 같은 공간의 자연으로, 그의 푸른색은 고국의 하늘과 바다이며, 자신의 마음을 담은 색이다. 작가를 대표하는 푸른색을 사람들은 ‘환기 블루’라고 부른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1970년 1월 27일 일기에도 볼 수 있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한 작가, 우리가 김환기 작가를 소중하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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